백태웅 옥중
사상고백
『감성적
社會主義는 극복되어야,
社勞盟은 사회주의 이해 엷었다』(I)
宋義鎬 <시사월간 WIN 기자>
3월12일 오후 원주교도소 접견 1호실. 수인번호 1000번의
옅은 청색 수의를 입은 백태웅(白泰雄·35)씨가 면회실의 아크릴
유리 저편에 상기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밝고 무척
건강해 보였다. 오른쪽 뺨의 옅은 점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민주당의
김홍신 의원이 그의 최근 심경과 관련한 특별면회를 한 후 일반
면회객으로 만난 기자에게 백씨는 감옥에서의 일상사를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얼굴이 좋아 보이는 것은 감옥 안에서 운동시간에 운동 열심히 하고
밥 많이 먹은 덕분이라고 한 그는 『사춘기도 아닌데 가끔 울적할
때가 있으며 그럴 때는 가곡 등 노래를 부르며 마음을 달랜다』며
멋쩍어 하기도 했다.
20여분 동안의 대화에서 그는 감옥 안에서 책을 많이 본다며 『책을
읽고 토론하고 활용할 수 있어야 지식이 되는데 그렇지 못하니 어디론가
슬슬 빠져나가 버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비디오로 영화를 보기도
하고(오늘은 키아누리브스가 나오는 영화였고 지난 주에는 『인디펜던스
데이』를 봤다고 말함) 영어공부를 하다가 올해 들어서는 일본어·독일어·중국어도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론서적 외에 외국어를 배우는 것은 외국에
나가면 물건 사는 말이라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라고 했다.
백씨는 또 최근 이론서적을 읽으며 21세기 한국의 진로에 관심을
갖고 있는데 책을 하나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감옥 안에서 후배 하나가 미술전시회가 열릴 때마다 캐털로그를
보내주어 그림감상을 하는데 쌓아놓고 보다 보니 뭔가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새로 발견하게 된다고 했다.
옥중의 백씨를 김의원과 함께 만나기로
한 것은 두가지 이유에서였다. 주체사상의 대부 황장엽 비서의 망명을
지켜보며 한때 남쪽의 가장 급진적인 운동가였던 백씨의 생각이
지금도 변함이 없는지, 나아가 그런 그가 황비서의 처신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궁금해서였다. 연대사태 이후 고민하는 대학의 운동권
후배들에게 그가 지금 어떤 말을 들려줄 수 있을지도 듣고 싶었다.
그를 만난 것은 원주시내에서 자동차로 10여분 떨어진 무실동에
있는 원주교도소에서였다. 기자의 면회는 허용되지 않아 김의원이
특별면회를 통해 그의 지금 심경을 듣기로 하고 기자는 나중에 일반
면회객을 가장해 만나기로 했다.
『참선을 하고 금방 내려온 수도승
같다』
백씨의 이 고백은 약 1시간30분에
걸친 김의원과의 면회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면회를 마치고 나온
김의원은 『그가 산에서 참선을 하고 금방 내려온 수도승 같았다』고
했다. 『백씨를 처음 보는 순간 너무나 밝고 눈빛이 곱고 따뜻해요.
방실방실 웃고…』 두 사람이 손을 잡고 나오다가 만난 시간이 불과
한시간 남짓인데 그 사이 정이 들어 순간적으로 끌어 안았다고 했다.
끌어안는 순간 그에게서 「사람냄새」가 나더란 말도 덧붙였다.
김의원의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원주를 벗어난 첫 휴게소에서 메모를
바탕으로 두 사람의 대화를 복원했다.
『오셨습니까』
─ 아이고, 고생많소(이때 김의원 곁으로 한 교도관이 입회했다).
『먼 길 오셨습니다』
─ 표정이 참 좋아요. 보좌관이 같이 들어오려고 했는데, 규정이
그렇다고 제지당했어요. 있다가 일반면회 때 만나보세요.
『요즘, 장총찬(소설 『인간시장』의 주인공으로, 약자편에 서서
거대한 사회부패구조에 도전하는 용감한 시민)이는 안 나옵니까.
요즘 같은 세상에 그런 사람이 있어야지요』
─ 그래요? 장총찬이 같은 사람이 있는 세상은 안좋은 세상이에요.
『물론 그렇지요, 그러나 요즘 세상이 어지럽게 돌아가니 한사람쯤
나와 정화해야 하지 않겠어요』
─ 책은 많이 넣어 줘요?
『책은 밖에서도 넣어주고 제가 여기서 구입을 할 수도 있습니다.
보고 싶은 책 나오면 구입합니다. 생각도 많이 하는 편인데, 여기서는
지식이 안으로 들어가기만 하고 밖으로 나오질 않아요. 지식이란
들어갔다 나왔다 해야 커지는 건데 얼마나 성장했는지 감을 잡기가
어려워요. 말하자면 효율이 높지 못한 것이죠』(이때 교도관이 『백태웅씨는
늘 공부만 해요. 하지 말라고 해도 안돼요』라고 거들고 백씨가
뒤늦게 『공안담당인데 저에 대해서 완전히 책임지고 있어요. 도움을
참 많이 받습니다』고 그를 소개했다).
─ 여기서 커피는 가끔 마십니까.
『거의 구경하기 어렵습니다』(그러자 교도관이 커피 두잔을 가져왔다.
김의원은 나중에 백군에게 커피 두잔을 모두 건넸다고 한다).
북한식은 효율이 함께 하지 않는
사회주의
─ 최근 황장엽 비서가 왔다는 얘기는
들었지요. 아직 오지는 않았지만 온 거나 마찬가지죠. 그런 점을
어떻게 생각하나 궁금해요.
『사람들이 처해 있는 위치에 따라 느낌이 다를 것 같애요. 사실
뭐 저는… 국내로 보면 좌파가 있고 여러 가지 입장이 다르지만
저희 같은 경우는 북한에 대해서는 비판적입니다. 이 사건은 북한의
현상태를 보여주는 바로미터가 아닌가 생각해요. 북한의 붕괴를
보여주는 조짐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봐요. 그보다는 북한 내부가
김일성체제에서 김정일체제로 바뀌는 체제변화를 제도화시키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입니다. 또 주체사상도 이제 변하지 않겠습니까』
─ 그럼요, 변해야지요. 변할 수밖에
없고요. 또 주체사상의 창시자가 일탈을 해버렸단 말예요.
『주체사상 관련서적들을 보았는데 저는 사상·이론적 측면에서
평가될 부분이 있고 통치 이데올로기로 평가될 부분이 있다고 봅니다.
사실 북한의 주체사상은 통치 이데올로기입니다. 통치 이데올로기로서
주체사상은 김일성 사망 이후 그 생명력이 다한 게 아니냐, 그래서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황장엽 비서의 입지가 좁아지고
그러다 보니까 아마 망명이란 방법을 택한 게 아닌가… 제 바람으로는
북한도 민주화를 과감하게 하고 경제적으로도 예전의 폐쇄적인 체제에서
개방쪽으로 나갔으면… 또 나가지 않을까 그런 생각입니다』
─ 시중에는 황장엽 비서 망명을
놓고 참 말도 많아요. 그런 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을 것 같은데.
『월간지에 보니까 서신이 공개돼 있더군요. 그걸 보고 상당히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황비서가 꿈꾼 것 중에는 망명정부도 있더란 말입니다.
북한체제를 대신할 수 있는 대안을 구상한 그런 느낌이 들고 그런
면에서 안기부가 상당히 대비하고 있는데… 또 그런 중요 문건들이
월간지에 실리고 굴러다니는 걸 보면 대북정책이 과연 일관성이
있는 건지, 한보사태 같은 게 터지니까 방향을 돌리려고 그런 건지
걱정도 되고…』
─ 그래요. 걱정할 수밖에 없는
얘기들입니다. 백형에 대해서는 사회주의에 대한 믿음이 변했을까
아닐까 이게 후배들이 궁금해 하는 내용인 것 같아요.
『사실 저희가 사노맹을 할 때는 사회주의에 대한 이해의 수준이
깊지 못했다고 봅니다. 당시에는 일종의 이념적 저항운동의 수준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군사독재 하에서 독재지배는 끝나야 하고 사회의 약자들이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대안이념으로서 일종의 인간해방이나 노동해방
등 감성적인 의미가 많이 담긴 사회주의 혁명을 생각해 온 것이죠.
그러다 소련체제가 무너지고 동유럽 개혁을 보면서 사회주의에 대한
회의가 깊어졌어요. 지금은 20세기적인 부를 분배하는 데 초점을
두는 사회주의가 아니라 21세기적인 사회를 진보의 방향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그런 종류의 새로운 사회주의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나라 망가뜨리는
서울대인 되지 말아야
사회주의에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저는 자본주의의 성과를 고스란히 감싸안으며 그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사회주의의 요소를 도입할 것을 주장했습니다. 자유와 평등,
노동해방과 인간해방을 향한 운동으로서의 사회주의, 독재와 관료주의나
비효율성으로 얼룩진 구 사회주의와 구별되는 새로운 사회주의로
나아가기 위해 이런 제안을 진지하게 검토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 사회주의자냐고 물으면 과거 의미에서의
그런 이념은 넘어서고자 합니다. 그러나 처음 갖고 있던 초심은
현대적으로 발전시키고 싶습니다. 다만 군사독재체제에서 불가피했던
비합법·비공개운동은 더이상 계속할 필요가 없다고 봐요. 또한
사노맹은 군사독재에 맞서는 이념적 저항운동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였고
사회주의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대안을 갖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보다 폭넓고 깊이있는 대중적 진보정치운동으로 거듭나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 초심을 승화한다는 말이군요.
본인이 생각하는 사회주의하고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북한식 사회주의는
어떻게 다른가요.
『그러니까 단적으로 말한다면 효율이 함께 하지 않는 사회주의라고나
할까요. 북한식 사회주의는 구조적으로 약점을 가졌다고 봐요. 정의와
효율이 동시에 추구돼야 한다는 점에서 기존 사회주의는 근본적인
약점이 있지요』
─ 대학가에서 사노맹과 같은 소위
PD(민중민주) 계열보다 NL(주사파)이 더 득세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대학생은 특성이 있지 않습니까. 아직 사회에서 참신하고 건강한
문제제기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그런 점하고 다른 한편으로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깊이 인식하는 데까지 가기 위해서는 상당한 연구가
필요하지 않습니까. 그런 특성이 아마 통일문제와 같은 데서 감성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쉽고 그에 비해 노동문제 같은 어려운 문제에 대해서는
답을 내지 못한 게 아닌가 해요. 그러다 보니 통일운동쪽에는 아무래도
조금 더 가능성이 있다고 본 게 아닌가 해요. 그러나 저는 학생운동
내의 어느 계열이 힘이 세냐는 중요한 문제는 아니라고 봐요. 사회
전체적으로 볼 때 과연 균형이 어떻게 맞춰지고 각 영역이 새로운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봐요』
─ 그렇지요, 중요한 문제는 전혀
아니지요. 앞으로도 사회운동이든 문화운동이든 하다못해 꼭 변혁운동이
아닌 청년문화라도 운동이 계속돼야 하는 것 아녜요. 후배들에게
운동방향에 있어 어떤 조언을 한다면.
『요즘, 대학생들이 고민을 참 많이 하는 것 같애요. 저는 대학생은
예비지식인이라고 봐요. 예비지식인이라면 지식인으로서 사회적
책무가 있어요. 지식인은 혼자 잘 먹고 잘 살려고 공부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공부를 했다면 그것을 사회에 환원할 시대적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사회에 보람있는 사람이 되려는 노력이
필요하단 생각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대학교육이 일반화되다 보니까
대학을 나왔다고 다 지식인이냐, 공부를 안하는 대학생도 참 많거든요.
정말 스스로 지식인다운 내용을 갖추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해선
안된다고 봐요. 운동이란 것도 빈 깡통이 내는 소리하고 속이 깊이
들어차서 문제제기하는 것 하고 효과가 다르다고 봅니다. 그래서
지식인다운 긍지와 역량을 갖추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마지막으로 많은 서울대 후배들이
저를 보고 싶어하는데 저도 서울대 출신이란 걸 자랑스러워 하면서도
한편으로 「우리나라를 서울대의 나라」라고 강준만 교수가 비판하지
않았습니까. 사실 우리나라에서 특히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하면
나라를 망가뜨리는 사람으로 인식돼요. 요새 김지하 시인이 글을
썼어요. 「국립 서울대학교」라는 시가 있어요. 그 시에 우리나라를
망가뜨리는 사람들도 배출했지만 우리나라를 구할 사람도 서울대에서
배출하고 있다, 그 글귀를 보면서 희망을 얻었어요. 우리 후배들도
정말 이 나라를 망가뜨리는 서울대인이 될 건지 이 나라를 살리는
서울대인이 될 건지 고민하고 우리나라를 살리는 재목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정말 고맙습니다. 사실 그 얘기는
서울대인이 아니면 하기 어려워요. 우리가 하면 공허하거든요. 이
시대에 뼈저리게 들어야 할 일침 같은 말이에요. 또 하나는 당신이
아직도 혁명가인가 물어보고 싶습니다.
『그거 한마디로 대답해야 됩니까. 저는 제 자신의 정체성으로 말한다면
여전히 혁명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혁명이라는 것이 기존사회에
대한 급진적인 파괴를 의미한다면 그런 쪽은 아닌 것 같애요. 기존
사회문제를 뿌리까지 직시하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로 보면서 그 일을 위해 자신을 던지고자 하는 사람이 혁명가라고
봐요. 흔히 급진적으로 사회를 바꿀려고 하는 사람은 혁명가고 서서히
바꾸는 사람은 개혁이다 개량이다 말하는데 저는 그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속도가 아닌, 문제를 근원까지 보고 근본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근본주의자인가 아니면 적당히 고치고 넘어가려 하는가의 차이라고
봐요. 우리나라가 개항한 지 1백년 정도 되는데 지금 경제적으로는
많이 발전했지만 정치적으로는 그때와 마찬가지 아닙니까. 자주권이나
외교주권면에서 우리나라가 근본적으로 바뀔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여전히 혁명가려고 합니다』
─ 요즘 또 운동권 출신들이 고시를 패스하고 정치권에도
와 있어요. 이것에 대해 일부는 비판하고 저 같은 경우는 오히려
이들이 들어오니 괜히 든든하단 말입니다. 정말 잘해 줄 것 같거든요.
재판도 잘해 줄 것 같고 정치도… 이 문제를 어떻게 보는지. 막말로
내가 사면권자가 되면 진즉에 백형을 사면해서 제도권에서 명판결을
폭넓게 하는 사람으로 역할하길 기대하겠는데… 좌우간 노력할 거고
그걸 대통령께 건의도 하고 싶어요. 이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내의 손만이라도 따뜻하게
잡아봤으면
『저는 80년대만 해도 저하고 말이
통하는 사노맹쪽과만 대화를 했어요. 저하고 생각이 다르거나 다른
길을 가는 사람을 만나면 생각을 전하는데 한참 시간이 걸려 불편했거든요.
가능하면 같은 사람하고 같이 있고 싶었어요. 시대가 바뀌어서 그런지
아니면 제가 이제 눈을 좀 떠서 그런지 이젠 정말 제가 가지 않은
다른 길을 선택한 사람들이면서 나름대로 그 분야에서 평가받는
사람들, 또 저와 전혀 다르지만 정말 멋있게 자기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좋아 보이고 그런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요. 배우고도 싶고요.
그리고 만났다 헤어지고 또 만나는 사람의 일이라는 게 항상 그대로
있는 게 아니구나 하는 걸 느낍니다. 이정우·송영길 변호사라든지
또 청와대 비서관하던 김영춘이나 이성헌씨 등 다 가깝게 지내던
친구들인데 예전엔 할 얘기가 많지 않았는데 갈수록 할 얘기가 많아진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이제 아마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각자의
영역에서 나름대로 기둥역할을 해가지고 이런 사람들이 모여 제대로
된 건물을 만들 때가 오리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때까지는 여러
영역에서 기둥으로 커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의
자산으로 생각해야 하지 않느냐 그렇게 봐요』
─ 신문은 마음대로 봐요.
『그럼요, 잡지도 많이 들어오니까 시사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게 돼요』
─ 혹시 지금 열정적으로 토론을
벌이거나 설득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요.
『예술이나 역사, 또는 가본 적 없는 나라 얘기라면 적극적으로
주고받고 싶습니다. 그러나 특정 인물을 설득하고 누구와 격론을
벌이고 그러고 싶지는 않아요』
─ 백형은 이제 다 빼앗긴 것 아닙니까.
답답할 때 「체념도 행복」이란 걸 혹시 느껴본 적이 있습니까.
『영등포구치소에 있을 때 한 외국인 수감자가 있었는데 굉장히
힘들어 했어요. 그래서 요구를 해서라도 고쳐야 할 것 아니냐고
했더니 그가 「당신은 정치범이다. 당신은 세상을 변화시키려다
여길 들어왔다. 그러니 세상변화를 위한 노력만 하면 되지만 나는
관세법 위반으로 들어왔다. 그러니 나 자신을 변화시키는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그 얘기가 상당히 의미깊게 받아들여졌어요. 그때부터
세상 변화시키는 것보다 나 자신부터 먼저 변화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때는 세상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의지로 가득찼지만 지금은 나부터
먼저 변화를 시키고 세상변화에 적극 노력하겠다. 그 노력도 너무
강해서 부러지지 말고 넉넉한 여유를 가지고 마음을 폭넓게 가지고
살아야겠다는 걸 절실하게 깨닫습니다. 감옥이라는 제약된 조건이
내게는 도(道)를 닦게 해주는 은총입니다』
김의원은 여기서 백씨가 철학자로
느껴졌다고 덧붙였다.
─ 감명깊게 읽은 책은 최근에 어떤 게 있어요.
『미테랑 부인이 쓴 「모든 자유를 누리며」입니다. 대통령 부인이면서도
민권운동가로 살아온 부인의 담대한 통찰력에 너무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부인에게도 이 책을 꼭 읽으라고 권했어요. 선을 추구하고
사회를 맑게 하는데 사회적 지위나 힘보다는 어떻게 그 사람이 살았는가가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 유럽 어딘가에는 감옥에 성문제를
해결해 주는 봉사가 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어요. 우리도 그런
방향으로 가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교도소 안에서 인간이니까 부부문제의
갈등 같은 것은 느끼지 않습니까.
『교도소에 오니까 상당히 많은 사람들(백씨가 교도관에게 물었다.
「70%까지 안되느냐」고 했더니 그렇게까지는 아니고 약 반수 정도라고
답했다)이 가정에 상당히 문제가 생긴다고 해요. 그런데 집사람은
면회 올 때마다 방실방실 웃어요. 그래서 「네가 바보가 아니면
내가 너무 좋은 남편이기 때문이겠지」 했더니 「당신은 왕자병
환자」라고 합디다. 웃고 말았습니다. 아크릴로 막힌 면회실에서
볼 때는 눈을 마주쳐도 참 답답해요. 정말 손만이라도 잡아봤으면
좋겠어요. 다른 것 다 떠나서… 딱 손 한번만이라도 따뜻하게 잡아봤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유일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은 눈빛밖에 없어요』(김의원은
이 말을 듣고 가슴이 철렁하며 눈물이 핑 돌았다고 했다).
─ 나는 감옥 안에 있지 않지만
답답할 때 세상에 대고 막 소리를 지르고 싶은 때가 있는데 그런
때가 없는지요.
『수감자 잘못으로 교도관이 곤란을 겪을 때는 정말 가슴이 아파요.
만난 게 기사화되면 나는 괜찮지만 규정 때문에 그 사람들이 피해를
보거든요. 검열받은 말까지 나가는데 제약을 받는 현행제도는 좀
바꿔졌으면 좋겠어요. 집필도 할 수 있으면 좋겠고…』
─ 공식적으로 신청을 해봤습니까.
『물론 하지 않았어요. 그 이유는 여기 있는 분들이 제가 신청하면
곤란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하고 싶다고 그 사람들 괴롭혀서야
되겠습니까. 그러나 속으로는 용솟음치고 있어요』
─ 그러면 어떤 내용을 집필하고
싶은가요.
『「21세기 한국사회의 진로」라는 책을 꼭 쓰고 싶어요. 지금 펜과
종이만 주어지면 쓸 수 있습니다. 머리 속에 이런 내용은 너무 많이
들어 있어요』
─ 법 자체를 고치는 문제가 아니라면
양심수들에게 글 쓸 자유를 법무부장관에게 한번 얘기해 보고 싶습니다(그는
이 말을 전하면서 보좌관에게 내일이라도 당장 공문으로 만들어
달라고 지시하며 법무부장관에게 간청을 할 거라고 했다).
『저는 부담스런 부탁을 하지 않는 자세를 지니고 싶습니다』(그때
입회한 교도관이 『참 모범이다. 정말 나무랄 데 없다』고 한마디
덧붙였다고 한다. 교도관들은 또 백씨를 찾는 분들이 많아 늘 긴장한다고
했다)
─ 지금 당장 출감한다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은.
『출감한다면 남아프리카의 나미비아 공화국에 있는 나미브사막에
가보고 싶습니다. 대서양의 거친 바닷바람에 부스러져 흙처럼 부드러운
나미브사막 위로 붉은 아침 해가 떠오르는 광경을 보고 싶습니다.
거기에는 천년을 살다가 단 한번 하얀 꽃을 피우고 생을 마감하는
외휘트시아라는 전설적인 식물도 있다고 합니다. 외휘트시아를 한번
보고 나면 반만년 역사를 기반으로 하여 우리 민족의 새로운 1천년을
열어갈 비전을 얻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들거든요』
서울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김의원은
다른 양심수들을 면회할 계획을 의무처럼 밝혔다. 마냥 뒤로 미룰
사안이 아니라고 했다. 백씨의 밝은 표정과 맑은 눈빛이 세상의
감옥에 갇힌 우리 일행을 오래도록 위로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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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태웅은
누구인가
백태웅씨는 공안당국이
「남로당 이후 최대의 지하운동조직」이라고 지칭한
「사노맹」(社勞盟·남한 사회주의 노동자동맹) 중앙위원장으로
활동하다 92년 4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돼 징역
15년형을 받고 현재 5년째 복역중이다. 서울대 법대
재학시절 총학생회장으로 대자보를 부활시키고 『자유언론』
창간 등 총학생회를 부활시킨 학원민주화의 주역이었다.
총학생회가 부활되자
백씨는 「서울대 프락치사건」 주모자로 낙인찍혀 1년간
징역형을 받았고 이후 「노동자계급 해방투쟁동맹」
간부로 활동하며 「이정로」라는 필명으로 레닌원전
등을 번역했다. 92년엔 함께 수감중인 동지 덕성여대
출신 운동권인 전경희(全慶姬·35)씨와의 옥중결혼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전씨는 최근 『옥중결혼은
없었다』고 밝혔다. 당시 중앙일보의 앞선 보도로 안기부가
문제를 제기, 예정된 혼례식은 무산되고 여전히 약혼자의
신분이라고 했다.
백씨는 96년 서울대
총학생회가 서울대생 4백명을 대상으로 「서울대 개교
50주년을 맞아 가장 만나고 싶은 선배」 조사에서 김영삼
대통령(27표), 신영복 성공회 신학대 교수(25표)에
이어 24표를 얻어 3위에 올랐을 정도로 학생들 사이에
화제의 인물이다.
사노맹」의 수괴급으로
무기징역형을 받은 박노해씨와는 동지로 이 조직결성을
결정하던 88년부터 같이 고민하고 뒹구는 사이였다.
그는 자유·평등·노동해방·인간해방을 지향하는 운동의
첫마음엔 여전히 변함이 없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군사독재체제에
맞섰던 사노맹과 같은 조직은 대중적 진보정치운동으로
거듭나야 할 때라고 주장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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