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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신문- 아침의 향기

백태웅 컬럼 모음

 

제목: [아침의 향기]미국비자를 신청하고 나서

 

[한 겨 레] 1999-08-12 () 칼럼.논단 17면 01판 1164자

 

나는 지금 미국으로 공부하러 떠나기에 앞서 비자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지난 7월6일 비자서류 일체를 제출한 지 이제 한 달이 조금 지났고, 가을 학기 시작이 멀지 않아서 약간은 조바심이 나려고 한다. 우리 정부로부터 사면이 되었지만 국가보안법 전력은 미국 정부도 신중히 다루는 대상인 모양이다.
 

태어나서 한번도 해외에 나가 본 일이 없는 내가 먼 이국으로 몇 년간의 시간여행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우선 겁부터 앞선다. 전공은 국제인권법으로 정했지만, 과연 내가 그 곳에서 무엇을 배우고 어떠한 미래를 구상하여 돌아오게 될까. 그리고 최고속력으로 질주하는 기관차 같은 한국 사회는 그 동안 또 어떻게 변화해 있을까, 모르는 일 투성이다.
 

나의 뒤에는 질긴 동아줄 같은 과거가 있다. 일년 전인 지난 해 이맘 때 나는 원주교도소의 독방에서 8.15특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여름 열기로 한증막처럼 달아오른 마루에 누워서, 순시를 도는 교도관들의 쩔렁거리는 열쇠소리를 들을 때, 나는 막막한 사막에 홀로 있는 듯 했다. 그런데 석방된지 불과 1년이 지난 지금, 나는 세상을 얼마나 친숙하게 느끼고 있는가.
 

그 때 이미 6, 7년을 감옥에서 보내고 있던 최호경, 조덕원, 이화춘씨, 그리고 안재구씨를 비롯한 젊은 학생, 양심수들이 지금도 고스란히 그곳에서 이 더운 계절을 맞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갑자기 등줄기에 서늘한 기운이 흘러내린다. 서울대 후배인 안치웅씨는 실종된지 이미 10년이 다 되었다. 그리고 법대 동창생이던 노진수씨는 82년 독서실에서 건장한 세 사람의 장년에게 불려나간 뒤 여태 연락이 없다. 이들 부모의 아픔은 누가 어떻게 씻어주어야 하는가.
 

과거의 상흔을 털어 내고, 우리 사회가 정상적으로 발전하기 위해 선행되어야 할 '상식의 승리'는 아직도 많은 부분 요원한 과제로 남아 있는 것 같다.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아 요즘은 나날이 몹시도 아쉽다.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이 땅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단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아, 사진처럼 뇌리에 담아 두려고 애쓰며 지낸다. 난마처럼 얽혀있는 구시대의 사슬이 여전히 억세고, 이 나라가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의 전망은 아직 흐리기만 하다. 그러나 오늘의 땀방울이 밑거름 되어 희망의 내일이 열릴 것이니, 우리는 또 신발 끈 단단히 묶고 새로운 꿈을 향해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백태웅/사회운동가



 

제목: [아침의 향기]도전하는 아마추어들을 위해

 

[한 겨 레] 1999-08-19 () 칼럼.논단 17면 04판 1141자



에테르가 마취제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비명을 지르는 환자들에게 톱을 휘두르며 절단수술을 감행하는 외과 의사들을 상상해 보라. 고통 없는 수술이 시작된 것은 19세기에 들어와서의 일이다. 치과 의사 윌리엄 모턴이 처음으로 수술에 에테르 마취제를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데 일부 의사들은 마취제 사용을 맹렬하게 반대했다. 고통도 일종의 치료이고, 또 수술 후의 감염을 예방하는 기능도 한다는 게 근거였다. 심지어 일부 의사는 고통이 인간조건, 특히 여성이기 위한 조건의 필수적인 부분이므로 마취제를 쓰면 안된다는 억설까지 내놓았다고 하니 참 기가 찰 노릇이다.
 

배를 가르는 수술을 마치고도 며칠 후면 퇴원하는 현대 의술에 비추어보면 우매하기 짝이 없는 논쟁이었지만, 기성 사회 주류의 저항은 언제나 그보다 약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미국의 역사학자 대니얼 부르스틴 박사는 `아마추어 정신이 민주주의의 진정한 미덕'이라고 갈파했다. 민주주의는 아마추어들에 의해 굴러가는 체제라는 것이다. 전문가가모든 것을 결정하고, 전문직이 최고로 대접받아야 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요즘 현실에서, 그의 말엔 더욱 신선한 설득력이 있다.
 

전문성이란 기성화된 것에 투철하고, 이미 정립되어 있는 지식에 정통하다는 뜻이다. 사회가 매끄럽게 돌아가기 위해서는 해당 분야를 잘 아는 각계 각층 전문가의 구실이 긴요하다. 그러나 치열하게 실험하는 아마추어 정신이 없이 정해진 궤도만이 전부가 되어 버린다면, 상황은 얼마나 절망스러울까. 우리는 어디서도 또 다른 에테르를 실험하는 모턴 박사 같은 이를 꿈꿀 수 없을 것이다.
 

전문가는 그냥 전문가일 뿐이다. 정녕 주류이고 임자인 것은 기존의 자리에서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을 펼치는 사람들이다. 수해복구 지원 모금전화로 며칠 만에 수십억원의 기금이 모이는 것을 보면, 우리 사회엔 아직 공동체의 정신이 살아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 시간에도 잠을 줄이고 부지런히 내일을 향해 달리는 많은 사람들이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거대하게 버티고 선 기성의 벽을 넘어, 자기가 발 딛고 선 자리에서 작지만 열심히 실험하고 모색하는 아마추어 정신의 전통이 든든히 자리잡았으면 좋겠다.
 

이 시대의 모든 아마추어들을 위해 힘차게 외치고 볼 일이다. 힘내라, 힘!
 

백태웅/사회운동가

 

제목: [아침의 향기]왜 난 이 먼길을 떠나왔나

 

[한 겨 레] 1999-08-26 () 칼럼.논단 17면 04판 1194자

 

시차 적응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시작한 노트러데임 로스쿨에서의 생활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빠듯했다. 아침 8시에 시작되는 하루는 밤 10시까지 계속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토요일과 일요일의 프로그램까지 학교에서 미리 정해서 잠시도 쉴 수가 없으니 이게 바로 로스쿨이구나 하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미국에서의 정착과정이 어려우리라는 것은 비자가 늦게 나오는 바람에 각오한 일이기는 했다. 학기가 시작되기 불과 이틀 전에 비자가 발급되어, 침구와 책상도 없이 새학기를 맞았다. 게다가 낯선 음식에다 다른 색깔의 사람들, 그리고 문화와 생활환경의 차이가 주는 정신적 중압감까지 겹쳐 지난 며칠이 한 달은 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유니버시티 빌리지 안에 아파트를 구하고, 새벽 3시에 차를 몰고 나가 24시간 여는 월마트에서 텔레비전을 포함한 대대적 생활용품 쇼핑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노트러데임에 미리 와서 박사과정을 하고 있던 유학생 친구들 덕분이었다. 노트러데임대학에 유학중인 석.박사과정, 포스트닥(박사후) 과정, 교환교수를 포함한 전체 유학생은 열 몇명이 되었고, 가족들이 각자 조금씩 음식을 만들어 와서 올해 유학을 온 3명의 유학생을 위한 조촐한 파티를 열어 주었을 땐, 비로소 여기서도 살아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공부하는 사람들답게 여러가지 화제가 풍성했다. 박사후 과정에 있는 한 친구의 연구논문이 이번에 (네이처)에 실린다는 얘기도 나왔다. 그는 인터넷의 두께를 측정해 봤다고 했다. 인터넷이 아무리 방대하지만 19번의 연결이면 모든 곳에 다 이를 수 있음을 밝혀 냈다는 얘기였다. 또 한 유학생은 톱니바퀴 효과를 이용한 초전도체의 실용화라는 논문이 (네이처)에 나왔다고 했다. 신문기자와 인터뷰를 했는데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으냐고 묻는 질문에 "박사과정을 마치고 국내에 귀국해서 연구를 계속하겠다"고 했다며 수줍게 웃는 모습이 너무 보기가 좋았다.
 

미국에 도착한 뒤 엿새 중 나흘은 아침에 비가 내렸다. 대지를 잠깐 적셔놓고는 물안개처럼 아침 햇살에 자리를 내주는 얌전한 비였다. 이른 아침을 먹고 학교로 향하는 길은마치 공원 산책로처럼 한가하다. 사람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는 다람쥐만이 아침길의 동무가 되곤 한다. 그 길을 걸으면서 나는 늘 생각한다. 왜 나는 이 먼길을 떠나왔을까. 그리고 멀고먼 거리를 두고 있는 우리 나라를 위해 또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백태웅/사회운동가



제목: [아침의 향기]가벼운 인사 넉넉해지는 마음

 

[한 겨 레] 1999-09-02 () 칼럼.논단 17면 01판 1167자

 

'평화와 세계질서 연구'라는 강좌를 함께 듣는 팔레스타인 급우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는 팔레스타인의 고등학교 영어 교사였다. 이스라엘과 관련된 평화교육 프로그램에 종사하다가, 평화문제를 더 공부할 필요가 있다고 느껴 노트러데임대학에 왔다고 했다. 표정이 밝고 쾌활해서 함께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었다.
 

그가 문득 물었다.
 

"얼마 전 유니버시티 빌리지에서 한국 유학생들의 모임이 있었죠?"
 

"예."


"그날 나도 그곳에 볼일이 있어 갔었는데, 사람이 그렇게 많은데 인사말 한마디 건네는 이가 없더군요. 한국 사람은 외국 사람을 싫어하는가 봐요."


"아, 그게 아닌데.." 그 이유를 설명하려다 보니 문득 내 머리를 스치는 게 있었다.
처음 미국에 도착했을 때 사람들은 지나가며 누구에게나 '안녕하세요'(Hi!)하고 웃었다. 한국에서야 낯모르는 사람에게 누가 그렇게 하는가. 그런데 모르는 사람에게도 그렇게 인사를 해야 한다니 몹시도 어색했다. 차차 인사하는 데 익숙해지면서, 이제는 흘끗 쳐다보기만 하고 그냥 지나치는 것이 사람들을 얼마나 불편하게 만드는지 약간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분명 문화의 차이였다.


미국 사람들은 엄청 인사를 열심히 하는 것 같다. 길을 가다가 슬쩍 스쳐 지나가도 될 일을 일일이 '실례합니다', '미안합니다'하고 토를 단다. 문을 열 때 뒷사람을 약간만 배려해 주면 금방 '감사합니다'(Thank you)라는 말이 나왔다. 때로는 간지러워서 못 견딜 지경이다. 물론 미모에 자신이 있거나, 사회적으로 안정된 사람일수록 더 그렇게 하는 경향이 있다고 하긴 한다.


과연 어느 쪽이 나을까. 우리도 등산을 할 땐 좁은 오솔길을 오르내리는 사람끼리 인사말을 주고받는다. 신선한 산의 정기 앞에서 마음을 열고 쾌활하게 덕담을 한마디씩 하곤 한다. 그건 곧 마음의 여유를 보여주는 것이다. 주위의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이고 모든 것을 포용하고 싶다는 의사표현이기도 하다. 모르는 사람과 무조건 인사를 하자는 건 달리 생각해 볼 면도 있긴 하겠다. 요즘같이 험한 세상에 혹시 오해를 받으면 어떻게 하는가. 그러나 옆집 사람과는 웬만하면 눈인사쯤 틀 만 한 게 아닐까 싶다. 늘 마주치면서 외면하기보다는 가볍게 인사말을 건네며 활짝 웃어줄 수 있다면, 그게 우리들의 정신건강에도 좋은 일이 아닐까.
 

백태웅/사회운동가

 

제목: [아침의 향기]결국 등에 메는 가방을 샀다

 

[한 겨 레] 1999-09-09 () 칼럼.논단 17면 01판 1151자

 

미국 애슈빌에서 해외근무를 하고 있는 형님이 시카고 출장을 오는 길에 이곳 사우스 벤드에 들렀다. 함께 노트러데임대학 구내를 구경하고, 그동안 바빠서 들이지 못하고 있던 침대와 식탁, 그리고 생활용품을 샀다. 형님은 나더러 멜가방(백팩)을 사라고 권했다. 아무리 편리해도 그렇지, 이 나이에 웬 멜가방이냐고 반문했더니 도리어 나를 타박했다. 공부하러 온 학생으로서 멜가방 사는데 망설일 이유가 뭐냐는 것이었다.


페루에서 온 변호사 밀라그로스가 멜가방을 샀다고 말할 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냥 한국에서 쓰던 점잖은 회사원용 가방을 들고도 충분히 견딜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사람이 다 자기 멋에 사는 법인데 하나쯤은 나도 나대로 지킬 것은 있어야 하지 않겠나 생각했다. 그러나 상황은 그리 간단한 게 아니었다.


한국에서 남은 일을 처리하고 연말에 합류하기로 한 아내는 나를 먼저 떠나 보내면서 꼼꼼하게 짐을 쌌다. 그릇이며, 냄비에다, 싱크대에 사용할 행주까지 모든 종류의 짐을 다 챙겼다. 큰 가방에 여름부터 겨울까지 입을수 있도록 양복도 세 벌이나 넣었다.
그런데 이곳에 도착한 이후 나는 여태껏 단 한번도 양복을 입을 기회가 없었다. 교수와 얘기를 하다가 아마도 졸업식이 양복 입는 유일한 기회가 되기 쉬울 거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건 달라도 너무 다른 세상이었다.


반바지 차림으로 수업 시간에 들어와서 콜라와 물을 수시로 마시며, 사과를 와작와작 깨물어 대는 학생들, 학생들 앞에서 태연히 책상 위에 앉아 강의하기보다는 얘기나누기를 즐기는 교수들, 자기 주장을 펴기 위해서 시간제한도 염두에 두지 않고 끝없이 치닫는 토론에 이르기까지, 같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순토종 한국인인 내가, 지나치게 실용적인 이 나라의 문화 하나하나에 이질감을 느끼고 불편해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결국 그날 나는 멜가방을 샀다. 그것은 작은 결단이기도 했다. 이제 나는 매일 가방을 메고 등교한다.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러나 나의 속내까지 가벼워지고 싶지는 않다.
당연해 보이던 모든 것을 의심하고, 일체의 기득권과 무임승차를 거부하고, 나를 나답게 하고, 서로가 서로의 내일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찾기 위해 이곳에 온 게 아니던가. 이곳의 나날이 더욱 무겁고 진지해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백태웅/사회운동가

 

제목: [아침의 향기]동티모르 비극과 나의 반성

 

[한 겨 레] 1999-09-16 () 칼럼.논단 17면 04판 1169자

 

1859년의 어느 여름날이었다. 스위스의 사업가 앙리 뒤낭은 이탈리아 북부지방을 여행하고 있었다. 그는 그곳에서 뜻밖에도 이탈리아-프랑스 연합군과 오스트리아 군대가 맞붙은 솔페리노 전투를 목격하게 된다. 그가 받은 충격은 컸다. "한 사람은 턱뼈가 달아나 버렸고, 또 한 사람은 머리뼈가 부수어졌고, 다른 한 사람은 가슴이 뭉개져 있었다. 분노의 함성과 고통과 절망의 신음.."


그는 즉시 자원봉사자 그룹을 조직하여 전쟁에서 다친 사람들을 보살피는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몇몇 개인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너무나 적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는 14개국의 대표와 함께 제네바 국제회의를 조직하고, `국제 적십자 위원회'를 결성하기에 이른다.


유고 내전 당시 밀로셰비치와 직접 접촉하며, 서방국가와의 막후 협상을 담당했던 `평화와 미래연구 국제재단' 대표인 얀 오베르그가 오늘 학교에 왔다. 그는 유고 사태와 관련하여 유엔을 포함한 서방의 대처가 얼마나 뒤늦고, 피상적이었는지에 대해서 침통한자기 비판을 했다. 시종일관 나직한 목소리로, 그러나 때로는 얼굴에 경련을 일으키며, 평화를 위해서는 현장에 있어야 하며, 총성이 나기 전에 평화를 위한 노력이 시작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세계의 분쟁지역을 누비며, 일신의 위험을 돌아보지 않는 그의 삶 앞에서, 나는 과연 인류를 위해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지를 가슴깊이 반성하게 되었다.


오늘날 동티모르에서 또 다른 인류의 비극이 진행되고 있다. 유엔의 선거감시단 아래에서 동티모르 독립에 관한 찬반 투표가 치러졌고, 80%에 가까운 주민이 독립에 찬성했다. 그러나 독립에 반대하는 민병대와 인도네시아 군대는 동티모르 주민에 대한 무차별 학살을 계속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하비비 대통령은 마침내 유엔의 평화유지군을 받아들이겠다는 뜻을 발표했고, 우리 정부도 유엔이 요청하면 평화유지군을 파병하겠다는 공식방침을 정했다.


난민 수용소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생활필수품의 부족으로 고생하고 있는 동티모르 주민들을 위해, 평화유지군이 한시바삐 파병되었으면 좋겠다. 동시대를사는 인류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 식탁 앞의 풍요만을 마냥 감사하기보다는,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 하려는 적극적 용기가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다. 동티모르에 평화가 깃들기를 이 아침에 간절히 기원해 본다.


백태웅/사회운동가



제목: [아침의 향기]엘레나와의 대화

 

[한 겨 레] 1999-09-23 () 칼럼.논단 17면 02판 1176자

 

엘레나는 콜롬비아에서 온 30대 초반의 여성 변호사다. 키가 작고 아담하게 생겨서 이국인이라는 느낌이 거의 들지 않는 친구이다. 그와 하루 한 시간씩 영어로 토론을 하기로 했다. 한시바삐 영어에 익숙해지기 위해, 수업과 별개로 미국 법대생과 토론을 하고 시간당 얼마씩 돈을 주는 것을 고민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뭐하러 그런 일에 돈을 들이느냐고 펄쩍 뛰면서 자기와 매일 얘기를 하자는 것이었다.


우리가 처음 대화를 나눈 주제는 콜롬비아의 정치상황이었다. 콜롬비아에 대한 나의 지식은 지극히 피상적이어서, 마약 밀매가 성행하고 콜롬비아 혁명군이 아직도 내전을 벌이고 있다는 정도가 전부였다. 나는 당연히 콜롬비아 정부는 민주적인가, 아니면 아직 독재정부인가부터 물었다. 그의 대답은 의외였다. 콜롬비아는 50년대 이래 군사독재를 벗어났고, 평화적 정권교체를 몇차례 거쳤다는 것이었다. 사상의 자유, 양심의 자유는 물론이고, 집회와 시위의 자유가 완벽하게 보장되고, 다양한 정당이 자유로이 정치활동을 벌이고있다고 했다.


그러면 우리 나라보다 훨씬 더 민주적인데, 콜롬비아의 정치상황이 왜 문제냐고 했더니, 엘레나는 잠시 말을 멈췄다. 잠시후 비감한 표정으로 부패와 폭력이 문제라고 내뱉었다. 여당이건 야당이건 정치적으로 부패해 있고, 정치권에만 들어가면 아무리 참신한 사람도 쉽사리 타락해 버린다는 것이었다. 또 하루에 한 명 꼴로 민간인이 실종되고, 심지어는 회사간의 분쟁에도 총기가 동원되기 일쑤란다.


콜롬비아와 우리는 조건이 꽤나 다른 것 같다. 이제 막 독재의 터널을 벗어난 우리는 과거청산 작업이 한창이다. 인권법의 제정, 국가보안법의 개폐, 양심수의 석방과 수배해제, 재벌개혁과 노동자의 권리 확대 등 여러 문제들이 시험대에 올라있다. 낡은 시대의 흔적을 지우고, 선진적인 정치, 경제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겪어야만 할 진통이리라.
엘레나는 대학생과 젊은이들의 관심사가 오로지 술과 댄스와 여행이라며 걱정을 했다. 인생을 즐기는 것도 중요하긴 하지만, 엉클어진 나라는 누가 책임지느냐는 것이었다. 사회의 변화가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어쩌면 콜롬비아와 우리는 똑같은 입장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부패와 폭력이 없는 세상을 위해 사는 게 자신의 최대 목표라며 다짐처럼 내뱉은 그의 마지막 말이 오랫동안 귓가에 맴돌았다.


백태웅/사회운동가

 

제목: [아침의 향기] 정의는 결국 승리한다

 

[한 겨 레] 1999-09-30 () 칼럼.논단 17면 01판 1196자



"칠레에서는 나뭇잎 하나라도 내 명령 없이는 움직이지 못한다"고 할 정도로 철권을 휘두르던 전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83)가 지금 영국 런던의 법정에서 초조하게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그는 지난해 10월 신병치료차 영국을 방문했다가, 재임 중 저지른 35가지의 고문행위를 이유로 스페인 정부가 발부한 영장에 따라 영국 사직당국에 체포되었다. 1973년 민선 아옌데 정부를 쿠데타로 전복하고 실권을 장악한 이후, 모두 25년 동안 대통령 또는 참모총장으로 재직해온 그가, 모국인 칠레가 아니라, 영국에서 체포되어 스페인 송환 여부에 대한 결정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칠레의 전직 국가 원수를 영국이 체포하고, 스페인에 재판관할권을 주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스페인 쪽의 반론 역시 만만치 않다. 인권 유린은 이미 세계적 차원의 문제이고, 200여명의 스페인 출신 칠레인이 피노체트에 의해 잔인하게 학살되었으므로, 그를 '고문금지 협약'에 따라 스페인 법정에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지난 9월15일, 칠레 정부는 방침을 바꾸어, 영국 경찰 감시 아래 가택연금중인 피노체트 전 대통령이 스페인이 아닌 네덜란드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재판받을 수 있도록 중재를 신청하겠다고 밝혔다. 아무튼 이렇게 하여 이제 그의 처벌은 확실시되고 있는 셈이다.


한때는 하늘을 찌를 것 같은 권력을 누리던 권력자가 역사의 법정에 의해 단죄되는 과정을 볼 때마다 경이로운 느낌이 들곤 한다. 절대적인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는 말도 있지만, 부패한 권력은 결국 또다시 역사의 이름으로 정정되어 가지 않는가. 이런 점에서 '정의는 결국 승리하기 마련'이라는 믿음이 항시 진부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 주위를 돌아보면 일단 힘을 가져야 한다, 힘이 있어야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하는 생각이 의외로 널리 퍼져 있음을 알게 된다. 원리와 원칙이 무엇인지, 지켜가야 할 대의가 무엇인지보다, 현실적 세력관계를 잘 읽는 것이 더 중요시된다. 그러나 정녕 역사를 밀고온 힘은 아직 존재하지 않지만꼭 있어야 할 것을 추구하는, 다소 무모해 보이기 마련인 이상주의적 열정이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될 것 같다. 피노체트가 어떤 처벌을 받을지 알 수 없지만, 국제사법재판소에 선 그의 모습을 그려보는 것이 요즘 나의 또하나의 즐거움이다.


백태웅 사회운동가

 

제목: [아침의 향기] 미국에서 꾼 무서운 꿈

 

[한 겨 레] 1999-10-07 () 칼럼.논단 17면 01판 1191자

 

우울한 아침이다. 간밤에는 꿈을 꾸었다. 미국에 와서 처음으로 꾸는 무서운 꿈이다. 온몸을 흔들며 정신을 차리려다가 눈을 떴을 땐 아침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며칠 전 읽은 어떤 작가의 <밀림 속에서>라는 글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68년 3월 어느 날, 15명의 미군 병사가 헬리콥터로 미라이(쑤완 옌) 마을에 투입되었다. 아무런 저항도 없는 그 마을에서 그들은 4시간 동안 죽일 수 있는 모든 것을 죽여 버렸다. 닭을 죽이고, 개를 죽이고, 소를 죽였다. 사람들도 죽였다. 여자와 아이와 청소년과 노인들을.


일년 이상 사실을 은폐하다가 전국 신문에 머릿기사로 그 대량학살이 보도된 뒤, 군 검찰이 수사에 나섰다. 다음은 수사 기록의 한 장면. “당신은 명령을 받고 따른 건가요?” “예, 그렇습니다.” “명령은 무엇이었나요?” “`숨쉬는 것은 모두 죽여라'였습니다.” 또 다른 심문 기록. “당신이 한 일은 무엇인가요.” “그들에게 M-16 사격을 했습니다.” “왜요?” “그들이 공격을 할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공격을 한다고요? 아이들과 아기들이?” “아이들 몸에 수류탄을 가득 넣고 어머니들이 수류탄이 든 아이를 우리에게 던질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노근리의 양민학살 사건이 보도된 뒤 국내외 언론이 경악하고 있다. 한국을 돕기 위해 참전한 미군이 도리어 한국 민간인 수백명을 학살했고, 오랫동안 진상규명을 회피하다가 이제 언론의 보도에 떠밀려 재조사를 시작했다는 점에서 또 한번 미라이 사건을 떠올리게 된다.


세르비아계가 코소보 주민을 학살한다는 이유로 미국은 코소보 공습을 감행하였다. 유고와 르완다에는 국제 전범 재판소가 설치되어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만난 노근리 양민학살 사건은 과연 어떻게 처리될까.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다. 거창 양민학살사건, 제주 4·3사건 등 아직도 미제로 남아있는 분단과 한국전쟁 전후의 상흔들에 미국과 우리 정부가 어떻게 대응하는가를 주목하게 된다. 그것은 현대 국제인권법의 초국가적 가치를 시험하는 좋은 시금석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미라이 사건에서는 30명을 기소할 증거가 나왔지만 윌리엄 콜리 중위 한사람만이 유죄가 되어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그는 영창에서 보낸 사흘을 포함하여, 4개월 보름여의 감옥살이를 끝으로 석방되었다. 노근리 주민의 가슴에 또 다시 그러한 못이 박히지 않기를 바란다.


백태웅 사회운동가

 

제목: [아침의 향기] 지구가 너무 복잡하다

 

[한 겨 레] 1999-10-18 () 칼럼.논단 17면 04판 1203자

 

150억년 전, 우주가 처음 탄생하기 이전에는 세상에 아무 것도 없었다. 지구가 탄생한 것은 그로부터 다시 100억년이 흐른 뒤다. 인간이 탄생한 것은 50만년 전의 일이고, 현생인류의 역사는 불과 5만년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이 영원불멸이라고 느끼고 만물의 우위에 인간을 놓는 사고가 넘쳐흐르지만, 사실 인간이란 종이 언젠가 사라진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자명한 사실이다. 마치 지금까지 지구상에 존재해 왔던 98%의 종이 멸종해버린 것처럼. 전체 우주의 시간에 비추어 보면 인간의 탄생은 짧은 간주곡에 불과하다. 그리고 지구조차도 언젠가는 우주에서 생명을 다하고 사라지게 될 것이다. 무릇 시작이 있는 것은 모두 끝나기 마련인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기쁘게 아침을 맞고 힘차게 새로운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것은 왜일까. 사람마다 그 까닭이 다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는 오늘 내가 발 딛고 선 땅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결과는 무엇이 되었건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고, 그것이 지구의 종말이면 어떠랴 하는 생각이다.
인류의 역사에 또하나의 이정표가 그어졌다. 드디어 지구 인구가 60억을 넘었다. 사라예보 코소보 분만실에서 태어난 60억째의 인류는 3.55kg으로 건강하다고 한다.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산모를 찾아가서 이 아이 탄생을축하했다.


현재까지 인류의 역사는 자신의 성장세를 잘 지속시켜 온 편이다. 지난 100년 사이에 인구는 4배 증가했는데, 세계 경제의 규모는 17배가 되었다. '천불생 무록지인'이요 '지불생 무명지초'라는 옛말처럼,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은 제각기 자기 먹을 것을 갖고 태어난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그러나 속도가 너무 빠른 것이 문제다.


기괴한 석상으로 유명한 남태평양의 이스터 섬은 한때는 수많은 폴리네시아인들이 정착해 살던 비옥한 땅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더 많은 땅을 개간했고 나무를 베었다. 그 결과 토양이 침식되고, 식량 수확이 줄어들고, 결국 사람이 살 수 없는 황폐한 땅이 되어 석상만이 섬을 지키게 되었다고 한다.


오늘날 자원의 고갈, 공기의 오염, 기상 상태의 변화, 마실 물의 부족 등 환경의 재앙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늘어가는 인구를 먹여 살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지속 가능한 개발'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해야 할 것 같다. 지구가 너무 복잡하다, 이제는.


백태웅 사회운동가



제목: [아침의 향기] 두 여성정치인의 좌절

 

[한 겨 레] 1999-10-26 () 칼럼.논단 17면 04판 1188자

 

아침에 배달된 (뉴욕 타임스)에 눈을 끄는 사진이 두 장 있었다. 1면 머릿기사와 주요 기사로 각각 실린 사진은 지구촌 다른 곳에서 벌어진 상징적 두 사건을 보여주고 있었다.
한쪽은 미국 대통령선거 출마 포기선언을 한 뒤 남편 보브 돌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는 엘리자베스 돌이었고, 또 한쪽은 인도네시아의 새 대통령으로 선출된 압둘라흐만 와히드가 고배를 마신 여성 정치가 메가와티의 손을 들어올리는 장면이었다. 나의 눈에 두 사진은 별개가 아니라, 같은 동전의 양면같이 보였다. 세계적으로 주목받던 두 여성 정치가의 고뇌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새로운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나의 경험과 기본적인 쟁점을 강조함으로써 기금모금의 열세를 만회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이었습니다." 엘리자베스 돌은 스티브 포브스나 조지 부시와 비교할 때 턱없이 부족한 자신의 기금 모금을 솔직히 시인하고, 공화당의 대통령 예비선거 후보를 사퇴한다고 선언하였다.


메가와티는 그동안 당선이 유력시되었는데, 집권 골카르당의 표가 와히드에게 쏠리는 바람에 참담한 패배를 맞았다. 와히드 자신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당선 가능성을 믿지 않았던 선거에서 대통령이 된 와히드가 자신의 손을 들어올렸을 때, 메가와티의 기분은 과연 어떠했을까? 그러나 그녀는 텔레비전 카메라 앞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나라의 단합을 위해 선거의 결과를 받아들이자고 인도네시아의 국민 여러분께 호소합니다."
여성은 이 세상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 두 여성 정치인의 실패가 상징적으로 보여 주듯, 그들의 사회적 지위는 아직도 본질적인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세상은 여전히 너무나 남성 중심적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새 대통령이 모든 공직에 여성의 비율을 30% 할당하겠다고 공약한 것으로 기억한다. 여권에선 신당 창당 작업을 한창 진행하고 있는데, 그 곳에서는 여성들이 과연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게 될까? 나아가 내년 총선에는 과연 몇 사람의 여성이 원내에 진출하게 될지.


메가와티는 부통령이 됐고, 엘리자베스 돌은 부통령 후보의 물망에 오르고 있다고 한다. 여성들을 '부'자 붙은 자리에 기용하는 것도 여전히 똑같은 것 같다. 차라리 그들이 깨끗하게 중도하차해버리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다음에 진짜 훌륭한 여성 정치인이 탄생할 수 있는 토양이 조금이라도 마련됐으면 좋겠다.


백태웅 사회운동가

 

제목: [아침의 향기] 외국인들이 보는 국가보안법

 

[한 겨 레] 1999-11-03 () 칼럼.논단 17면 04판 1179자



동북아시아의 작은 나라 한국을 가까이 접할 기회가 없었던 외국인으로서는 한국이라는 나라가 극히 추상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우연히 한국사람을 알게 되면 한국과 관련한 일체의 소식을 그 사람을 통해서 이해하기 마련이다. 그러니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모두 조심스러워지게 된다.


지난달 파키스탄에서 군부 쿠데타가 일어났을 때, 나는 파키스탄에서 박사과정으로 와 있던 알리에게 달려가 파키스탄의 현재의 정세와 앞날에 대해서 물었다. 그는 군부 쿠데타가 자신의 잘못이기나 한 듯 얼굴을 붉혔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나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절감하였다.


나의 경우에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며칠 전에는 국제인권법 교수인 가쓰가 나의 편지함에 책자를 하나 넣어놓았다. 국제과학자연맹이 발간한 회보였는데, 지난 8.15에 있었던 한국의 양심수의 석방을 알리는 내용이 실려 있었다. 다소 시의성이 떨어지는 그 자료를 굳이 나에게 보낸 것은 한국에 대한 관심을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이리라.


도서관 컴퓨터실에서 몇 자리 건너에 앉아있던 같은 과 동료가 유엔 인권위 홈페이지에 한국에 대한 새 자료가 떴다며 들어가 보라고 성화를 부렸다. 아닌게 아니라 그곳에는 한국 정부가 96년 유엔에 제출한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제2차 보고서에 대해, 유엔 인권위가 며칠 전에 발표한 중간 결론이 실려 있었다.


유엔 인권위의 자료를 읽어 내려가는 동안 나는 목덜미가 뜨뜻해지는 것을 피할 수가 없었다. 결론은 단순 명료했다. "비록 한국 정부는 국가보안법의 개정 의사를 밝히고 있지만, 국민대중이 그 법을 지지한다는 이유로 법의 유지를 합리화하고 있는데, 그것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는 일이다." 국제법적 상식에 비춰, 한국의 국가보안법이 사상과 표현,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침해하는 악법이라는 것은 이미 정설이 됐다. 그런데 소수 보수세력의 의견이라면 몰라도, 있지도 않은 '국민 대중의 의견'을 이유로 내세워 궁색하게 국가보안법의 존속을 변명해야만 하는 것일까?


정부.여당이 새로 마련한 국가보안법 개정안 초안에는 제7조조차도 없애지 않았다고 한다. "한국 대통령도 그법 때문에 처벌을 받은 적이 있다면서, 왜 그걸 없애지 못하는 거예요?" 나는 어물어물 이렇게 대답하고 말았다. "기다려 봐요. 유엔 인권위의 최종보고서가 나오기 전에 혹시 국가 보안법이 완전 폐지돼 있을지 누가 알아요."


백태웅 사회운동가

 

제목: [아침의 향기] 아시아의 미래를 준비하자

 

[한 겨 레] 1999-11-11 () 칼럼.논단 17면 01판 1207자

 

몇해 만에 (비포 더 레인)이라는 영화를 다시 보았다. 마케도니아를 배경으로 진행되는 이 영화에서는 소녀 자미라의 죽음을 둘러싼 얘기들이 펼쳐지는데, 그림같은 장면들이 인종과 종교를 둘러싼 갈등 속에서 신음하는 옛 유고 지역의 현실을 고뇌하게 만든다.
처음 이 영화를 본 것은 교도소 독방에서였다. 안기부에서의 수사와 재판과정을 거쳐 독방에 보내진 뒤, 정서적으로 거의 고갈 상태에 빠져 있던 나에게 이 영화는 분쟁으로 얼룩진 세계로 눈을 돌리는 계기가 됐다. 영화 속의 한 수도사가 선문답처럼 내뱉는 말이 있다. "시간은 죽어 없어지지 않고, 원은 둥글지 않다." 알 듯 모를 듯한 이 화두는, 같은 시간 속에서 전혀 다른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고통이 사실은 우리와 무관한 것이 아님을 역설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보스니아 내전에서 코소보 사태로 이어지는 옛 유고지역의 분쟁은 국제문제 최대의 관심사로 부각되고 있다는 점에서 어쩌면 행운인지도 모른다. 인구로 생각하면 결코 가볍게 다루어 질 수 없는 대상임인데도, 아시아는 미국을 비롯한 서구의 시각에서 여전히 국외자로 취급되고 있다. 거기에는 물론 아시아인들 자신의 잘못도 있다. 냉전 질서가 해체된 이후, 미주기구, 범아프리카 기구, 유럽공동체 등의 지역 연합체들의 활동이 활성화되고, 국가의 경계를 넘어선 협력체계를 구축해 가고 있는데, 아시아는 지역 연합을 위한 모색이 아직 답보상태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 동아시아는 중대한 전기를 맞고 있다. 일본은 군비를 확대하며 안전보장이사회의 여섯 번째 상임이사국이 되려고 기를 쓰고 있고, 중국 또한 러시아의 공백을 대신하는 아시아의 맹주가 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대만이 독립을 선언할 경우 중국은 대만 침공을 감행하여 무력통일을 이루겠다는 정책을 세워놓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남한과 북한은 아직 핵 문제 이후 정상적인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있고, 한반도를 넘어선 변화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런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다.


며칠 전 정부의 정책기획위원회와 새천년위원회는 '한국의 5대 비전과 10대 전략'이라는 것을 내놓았다. 거창한 구호가 다소 눈에 거슬리기는 했지만, 우리 민족의 장기전망을 세우는 일은 정말 시급한 과제다. 한.중.일 3각 협력체제 구축을 제기한 학자가 있다는 얘기가 특히 반가웠다. 지금이야말로 우리나라가 동아시아의 새로운 국제질서 형성을 위해 능동적으로 떨쳐 일어나야 할 때다.


백태웅 사회운동가

 

제목: [아침의 향기] 미국 고교 정문의 금속탐지기

 

[한 겨 레] 1999-11-23 () 칼럼.논단 17면 01판 1161자

 

미국 컬럼바인 고등학교 총격사건을 신문에서 보고, 학생들의 총기사용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는 했지만, 실제 학교가 어떤 식으로 대처를 하고 있는지는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시카고 고등학교에서 1, 2학년 학생들을 만날 기회가 생겼다. 사회교육의 일환으로 열린 토론회에서 인권과 관련한 강좌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하루 동안 다녀왔던 것이다.


학교의 분위기가 어떨까 궁금해하며 정문을 들어서는 순간, 제일 먼저 나를 놀라게 한 것은 금속탐지 검신기와 검색대였다. 공항 출입국 청사에서나 있을 법한 검색장치가 학교 앞에 설치되어 있었다. 모든 학생들이 검색대에서 가방 검사를 받고, 또 검신기에서 삐 소리가 나면 동전 하나까지 꺼내어 완전히 소리가 나지 않아야 학교에 들어서는 것이 허용되는 것이었다.


그날 초청을 받은 나와 우리 일행들도 그러한 점에서는 예외가 아니었다. 나는 손목시계를 푸는 것을 잊어버려서 검신기를 몇 번이나 들락날락해야만 했고, 마지막에는 직접 손으로 몸수색까지 당하면서비참한 생각을 금할 수 없었다. 어쩌다가 학교가 이런 지경에 와 있는 것일까?


안내를 맡은 3학년 학생에게 등교 길에 검색 받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 보았더니, "우리의 안전을 위해서 그런다는 것은 알지만, 가끔은 기분이 나쁘다"고 대답했다. 그것이 과연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최선인지에 대해서 여전히 의구심이 든다. 너무 단순하고 무지막지한 방법이 아닌가. 물론 교사의 안전도 고려가 되었을 것이다.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직업차례를 매기면 경찰과 소방대원 다음으로 교사라는 우스갯소리까지 있을 정도니까.


한국은 상황이 다르긴 하지만 교육문제가 심각하기는 마찬가지다. 고등학교 국어교사인 자형은 학교에서 교사로서 교육자적 실험을 해 볼 여지가 거의 없다며 한국 학생들의 상태에 대해 걱정하는 말씀을 자주 하신다. 학생의 처지에서도 그렇다. 머지않아 고 3이 되는 조카 녀석을 보노라면 한국 고등학교의 최대 관심사가 대학입시인 것이 못내 답답하다.


한창 피어나는 미국 고등학생들이 예쁘게 자신을 가꾸고 있는 모습을 보면 괜히 샘이 났다. 우리 아이들에게 좀더 자유로운 교육환경과 더 나은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하되, 미래에 대한 진취성을 한껏 끌어올리는 방향으로 교육제도를 바꾸는 일은 왜 이리 더디기만 한 것일까.

 

백태웅 사회운동가

 

제목: [아침의 향기] 건강한 미인이 늘어나기를

 

[한 겨 레] 1999-12-01 () 칼럼.논단 17면 01판 1220자

 

옛 중국의 미인 서시는 아미를 찌푸린 모습이 더없이 아름다웠다고 한다. 하늘거리는 허리로 이마를 찌푸린 서시가 왕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모습을 보고, 부쩍 미간을 찌푸리고 다니는 사람이 늘었다고 한다. 이마를 찌푸린다고 해서 미인이 되는 것이 아니건만 그 겉모습만 배우려고 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일인 것 같다.


지금 일본에서는 굽 높은 구두로 인해 수난을 당하는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다. 몇 주 전에는 도모미 오카와라는 25살의 직장 여성이 집으로 운전을 하면서 돌아오는 길에 기둥을 들이받아 옆자리에 타고 있던 친구를 죽게 하는 사고가 있었다. 굽이 높은 구두 때문에 브레이크를 제대로 밟을 수 없어서 사고를 냈다고 한다. 그의 구두 굽 높이는 6인치(약 15cm)였다. 몇 달 전에는 어떤 유아 놀이방의 직원이 10cm가 넘는 샌들을 신고 있다가 넘어져 두개골 골절로 죽은 사고도 있었다. 한 의사 말로는, 굽 높은 신발 때문에 발을 다쳐 병원을 찾는 환자가 지난 한 해 동안 20퍼센트 늘었다고 한다.


계단에서 미끄러지고, 길거리에서 넘어지고, 발이 접질려서 다리뼈가 부러지고 얼굴에 타박상을 입어가면서도, 많은 여성들이 그 위험을 고스란히 감수하려고 한다는 것이 문제다. 이제 열 다섯이 된 한 일본 여학생의 말. "나도 여러 번 발목이 접질리거나 삔 적이 있지만 이 유행이 끝나기 전까지는 절대 그만두지 않을 거예요. 귀엽잖아요." "굽 높은 신발을 신으면 키가 커 보이고, 다리가 길어 보여서 좋아요. 이 높이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면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모를 거예요."


미국의 여자들을 보기 전에는 그들이 모두 키 크고 늘씬한 미인들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작고 못생긴 여자들이 더 많았다. 자신의 몸을 못 가눌 정도로 뚱뚱한 여자들도 한둘이 아니었다. 결국 매스컴에 의해 조작된 미적 기준이 뭇 여성들을 괴롭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실과는 거리가 있는 허구인데도 말이다.
날씬하고 콩나물처럼 키만 큰 여자들이 미인인 것처럼 생각되는 사회풍조가 언제 시작되었는지 또 언제 끝날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는 우리 나름의 미적 기준을 가져야겠다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 여자들의 구두 굽 높이는 얼마나 될까. 8인치(20cm)에 육박하는 일본 여성들의 수준에 미치지는 않겠지만 만만치는 않을 것이다. 대지에 든든히 발바닥을 붙이고, 편안하고 안정감 있게 발걸음을 떼 놓는 건강한 미인들이 늘어났으면 한다.


백태웅 사회운동가

 

제목: [아침의 향기] '시애틀시위'가 남긴 과제

 

[한 겨 레] 1999-12-13 () 칼럼.논단 17면 01판 1160자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라디오에서 시애틀 경찰 총수의 사과 기자회견 뉴스가 흘러나왔다. 올해 55살인 시애틀 경찰 총수는 세계무역기구 각료회의와 관련해 벌어진 시위가 폭동으로 발전한 사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것을 사과하고, 몇 달 안에 경찰청장 직을 사퇴할 것임을 밝혔다.


지지난주 시애틀에서 벌어진 비정부기구의 시위는 여기가 과연 미국이 맞는가를 의심하게 만드는 대사건이었다. 30년 만에 다탄두 최루탄이 등장했고, 비상사태가 선언돼 시내 중심가에 통행금지가 선포되기도 했다. 미국에서 최대의 쇼핑시즌이라고 하는 시기에 이러한 일이 벌어진 것에 대해 시민들의 비난 여론이 빗발치면서 경찰은 강경 진압 정책을 채택했다. 진압봉으로 무차별하게 시위대를 구타하고, 심지어는 고무 탄알 총을 직접 얼굴을 겨냥해서 쏘는 장면이 텔레비전에 보도되면서 역으로 경찰의 대응에 대한 비난도 널리 일어나고 있다.


4만여명의 시위대가 시위를 벌이고, 500여명의 연행자를 낸 이번 사태의 근원에는 세계무역기구에 대한 노동자와 환경운동, 그리고 비정부기구들의 반대정서가 자리잡고 있다. 미국 노동 총연맹 산업별회의는 무역 자유화로 인해 일자리가 적어진다는 이유 때문에, 환경단체들은 환경규제에 관한 내용이 지나치게 완화된다는 점 때문에, 유럽이나 아시아에서 온 비정부기구들은 농업에 대한 개방이 자국의 산업기반을 무너뜨린다는 등 각각 다른 이유로 세계무역기구의 뉴라운드를 반대하고 있다.


백악관 일부에서는 클린턴이 너무 깊숙이 개입한 것에 대한 후회의 목소리도 있다. 미국에서 회의를 개최하면 회의 의제에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으리라고 판단하고 클린턴이 직접 일선에 나서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클린턴 정부는 별로 잃어버린 것이 없는 것 같다. 왜냐하면 비록 이번 협상이 결렬되긴 했지만, 세계무역기구의 뉴라운드는 계속 될 것임을 도리어 확실히 사람들에게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국내 농산물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서 동분서주했던 것으로 신문에 보도되고 있다. 그러나 솔직히 한국의 입장에서 세계화를 위한 준비가 과연 얼마나 되어 있는가에 대해 걱정이 앞선다.


저마다 자국의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 있는 국제 외교의 한가운데서, 한국 정부가 국민의 총의를 모아 더욱 강력히 대처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백태웅 사회운동가

 

제목: [아침의 향기] 소신정치와 백화점정치

 

[한 겨 레] 1999-12-20 () 칼럼.논단 17면 01판 1213자



최근 미국 텔레비전 뉴스에서는 클린턴과 힐러리를 빼놓고는 얘기가 되지 않을 정도로 그들 부부의 동정이 자주 보도된다. 대통령인 클린턴이 화면에 자주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특히 눈을 끄는 것은 뉴욕주 상원의원 출마 선언 이후, 힐러리가 부쩍 뉴스를 자주 타고 있다는 사실이다. 힐러리가 선거운동을 하느라 거의 뉴욕에서 살다시피 하다보니, 백악관에서 독수공방(?)하는 클린턴이 불쌍하다는 농담을 하는 사람도 있다.


며칠 전 힐러리는 미국 군대의 동성애자(게이)에 대한 정책을 강력히 비판하는 발언을 해서 여론의 주목을 받았다. 현재 미국 군대는 동성애자에 대해서, '묻지 않고 말하지 않기' 정책을 취하고 있다. 동성애자가 군대에 복무할 수 있도록 하되, 군대에 있는 동안 동성애 행위를 해서는 안되며, 동성애자라는 것을 공개적으로 밝혀서도 안되고, 또 상관이 그들에게 동성애자인지를 묻는 것도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 포트 캠벨의 군사법정에서, 잠자고 있던 동성애자 사병을 야구 방망이로 마구 때려서 숨지게 한 육군일병에게 무기징역형이 선고되자, 힐러리는 미군의 '묻지 않고 말하지 않기' 정책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동성애자들이 성적 지향 때문에 차별을 받지 않고, 나라를 위해 봉사하고자 한다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던 것이다.


내년의 대통령 및 상원의원 선거를 앞두고 벌써 언론에는 선거얘기가 가득하다. 한번도 뉴욕에 살아본 적이 없고, 뉴욕에 별다른 연고도 없는 힐러리가 상원에 출마하는 것을 두고 비판여론도 적지 않기 때문에 뉴욕의 범죄율을 획기적으로 끌어내린 현직 시장 줄리아니와의 사이에서 벌어질 팽팽한 대결은 내년 선거까지 큰 관심사가 될 것 같다.
미국의 정치판을 보며 정치라는 것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유사한 점이 많다는 것에 놀라게 된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미국의 정치에서는 쟁점이 확실하게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자기의 정치적 견해를 명확히하고 뚜렷하게 구별되는 색깔로써 대중에게 다가가 심판을 받는 그들의 선거캠페인을 보며, 백화점 식으로 이 정당과 저 정당의 주장이 모두 대동소이한 우리 정치를 부끄러워하게 된다.


미래를 놓고 상이한 정책으로 활기차게 논쟁을 벌이는 새로운 정치문화가 우리에게는 과연 불가능한 것일까. 우리나라의 21세기 비전을 둘러싼 정책대결이 시작될 때, 비로소 국민과 유리된 채 정쟁만 일삼는 국회도 근본적으로 바뀔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백태웅 ·사회운동가

 

제목: [아침의 향기] 새천년을 향한 촛불을 켜자

 

[한 겨 레] 1999-12-27 () 칼럼.논단 17면 01판 1177자

 

새로운 천년기의 시작을 며칠 앞두고, 컴퓨터2000년 인식오류(Y2K) 문제에 대한 걱정은 거의 절정에 이른 것 같다.


이미 몇 달 전부터 관공서나 기관별로 Y2K 대비 모의실험이 진행되고, 개인들에게는 새해 첫날이 시작됨과 동시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한 유인물들이 줄을 잇는다. 일부 조심성이 지나친 사람들은 새로운 천년의 시작이 도리어 세상의 종말이 될 것이기나 한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있다. 비상식량을 사 모으기도 하고, 난방이 안될 때를 대비해서 보온용 침구를 추가로 구입하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눈을 끈 것은 장기 정전 사태를 대비한, 거의 한아름은 됨직한 대형 초였다.


미국 사람들은 촛불을 좋아하는 것 같다. 일본에서 교환교수로 온 마코토라는 친구와 노트러데임 경기장에서 열린 미식축구경기를 보러 간 일이 있다. 경기가 끝난 뒤, 노트러데임 대학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는데, '촛불만찬'이라는 이름의 특별 메뉴가 있기에, 거금 십여 달러를 들여 티켓을 구입하고 들어갔다. 그런데 정작 놀라게 한 것은 평상시와 다름없는 식탁 위에 단지 촛불을 하나씩 켜 놓았을 뿐이었다. 과연 그들에게 촛불의 의미가 무엇이기에 촛불하나 더 있다는 이유로 몇 달러의 값을 더 치러야 하는 것일까.
아침에 먹던 밥과 반찬을 저녁에 또 그대로 먹을 수밖에 없는 것이, 안타깝긴 하지만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는 현실이다.


한 끼를 제대로 때우는 일이 까마득하게만 느껴지는 시간을 살아가는 불우한 사람들도 세계 곳곳에 산재해 있다. 그러니 밥을 먹으며 촛불 하나를 더 켤 수 있는 생활의 의미는 과연 얼마나 엄청난 것인가. 휘황찬란한 샹들리에의 불빛도 좋지만, 파라핀 향료에 심지를 대고 원시적으로 산화하고 있는 촛불의 미학 속에서 어쩌면 삶의 풍요로움은 더욱 쉽게 확인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크리스마스 분위기 넘치는 상가를 거닐면서 나는, 연도인식오류를 대비한 대형 초를 사는 대신, 조그마한 초 한 자루를 샀다. 인류 역사에서의 두번째 밀레니엄이 가고 세번째 천년이 열리고 있는 지금, 새로운 천년을 향한 첫걸음이 두려움이 되기보다는 앞날에 대한 작은 희망이었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지구상의 모든 사람에게 희망과 평화가 함께 하고, 축복과 풍요로움이 넘치는 미래를 기원하며, 나는 올해의 마지막 날에 그 작은 촛불을 켜고 저녁 식사를 할까 하고 생각하는 중이다.


백태웅 사회운동가